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,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.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라인 동맹 (문단 편집) === 공국 === * [[나사우 공국]] * 창설 회원국{{{-2 (1806년 7월 12일)}}} * 의무 제공 병력: 1,680명 * 나사우-우징겐 후국과 나사우-바일부르크 후백국이 통합하여 공국으로 승격했다. 사촌 형제인 나사우-우징겐 후작과 나사우-바일부르크 후작은 프랑스에 합병당할 것을 우려하여 라인 동맹에 가입하고 통합에 합의했으며, 나사우-우징겐 후작에게 적법한 계승자가 없는 상황이라 어차피 나사우-바일부르크에 상속될 예정이었기에 통합이 수월했다. 두 후작이 공동 공작이었으나 나사우-우징겐 후작에게 우선권이 있었고, 명목뿐이긴 하지만 라인 동맹 의회의 제후원 의장을 맡았다. 1816년에 나사우-바일부르크 가문으로 통합되었고, 이후 1866년 [[프로이센-오스트리아 전쟁]] 당시 오스트리아의 편에 섰다가 프로이센에 합병당했다. 이때 먼 친척인 [[오라녀나사우 왕조|오라녀나사우]][* 원래 나사우 가문의 분가인 '나사우-딜렌부르크'였으나 [[오랑주 공국]]을 상속받으면서 새로운 분파를 개창한 것이다. 프랑스의 오랑주(Orange)는 네덜란드어로 오라녀, 독일어로 오라니엔(Oranien)으로 발음된다.]는 네덜란드 국왕과 룩셈부르크 대공을 동군연합으로 겸하고 있었는데, 1890년 네덜란드 왕국에서 [[빌헬미나 여왕]]이 즉위하면서 룩셈부르크 대공은 살리카 법에 의거해 당시 영지를 잃은 상태인 나사우-바일부르크 가문에 상속되어 현재까지 이어진다. * ''아렌베르크 공국'' * 창설 회원국{{{-2 (1806년 7월 12일)}}} → 베르크 대공국에 합병{{{-2 (1810년 2월 16일)}}} * 의무 제공 병력: 379명 * 원래 아렌베르크 공국은 라인강 서안에 있었으나 프랑스에 합병되었고, 1803년에 보상으로 기존 뮌스터 주교후령을 세속화하면서 분할된 메펜 공작령과 레클링하우젠 후작령 등을 받았다. 1808년에 당시 공작인 프로스페르 루트비히는 [[조제핀 드 보아르네]]의 조카와 결혼하여 나폴레옹의 인척이 되었는데, 사냥 중 사고로 시력을 잃으면서 영지를 포기했다. 북해 연안이 프랑스 제국에 합병되면서 베르크 대공국에 합병된 영토 중 메펜 공작령은 프랑스 직할령이 되었다. 프로스페르의 작위는 유지되었으나 1811년 스페인에서 영국군에 포로로 잡혔고, [[빈 체제]]에서 메펜 공작령은 하노버 왕국으로 레클링하우젠 후작령은 프로이센 왕국으로 합병되었다. 아렌베르크 공작가의 작위는 그대로 유지되어 [[슈탄데스헤어]]로 편입되었다. * [[작센바이마르아이제나흐 대공국|작센바이마르아이제나흐 공국]] * 1806년 12월 15일 가입 * 의무 제공 병력: 800명 * 1741년부터 작센바이마르 공국과 작센아이제나흐 공국은 동군연합으로 유지되고 있었으나, 1809년 9월 20일에 정식 통합되었다. [[베틴 가문]]의 종가로 원래는 작센 선제후를 맡고 있었으나, [[슈말칼덴 전쟁]]에서 패하여 1547년에 분가인 작센-게사페에 선제후 권리를 넘겼다. [[빈 회의]]에서 프로이센 왕국은 작센-게사페의 작센 왕국을 완전히 합병하고 대신 작센-바이마르-아이제나흐를 대공으로 승격시키고자 했으나, 다른 강대국들의 견제로 무산되었다. 하지만 작센-바이마르-아이제나흐를 대공으로 승격시키는 안은 그대로 통과되었으며, 이에 따라 1815년에 대공국으로 승격했다. * 작센고타알덴부르크 공국 * 1806년 12월 15일 가입 * 의무 제공 병력: 1,100명 * 1826년에 단절되어 [[튀링겐]] 일대의 베틴 가문의 영지가 재편되었다. * 작센코부르크 공국 * 1806년 12월 15일 가입 * 의무 제공 병력: 400명 * 1826년 튀링겐 일대의 베틴 가문의 영지가 재편되면서 [[작센코부르크고타 공국]]이 되었다. * [[작센마이닝겐 공국]] * 1806년 12월 15일 가입 * 의무 제공 병력: 300명 * 1826년 튀링겐 일대의 베틴 가문의 영지가 재편되면서 작센마이닝겐힐드부르크하우젠 공국이 되었다. * 작센힐트부르크하우젠 공국 * 1806년 12월 15일 가입 * 의무 제공 병력: 200명 * 1826년 튀링겐 일대의 베틴 가문의 영지가 재편되면서 [[작센알텐부르크 공국]]이 되었다. * 안할트베른부르크 공국 * 1807년 4월 11일 가입 * 의무 제공 병력: 240명 * 안할트데사우 공국 * 1807년 4월 11일 가입 * 의무 제공 병력: 350명 * 라인 동맹에 가입하여 후국에서 승격했다. * 안할트쾨텐 공국 * 1807년 4월 11일 가입 * 의무 제공 병력: 210명 * 라인 동맹에 가입하여 후국에서 승격했다. * [[메클렌부르크슈트렐리츠 대공국|메클렌부르크슈트렐리츠 공국]] * 1808년 2월 18일 가입 * 의무 제공 병력: 400명 * [[빈 체제]]에서 대공국으로 승격했다. * [[메클렌부르크슈베린 대공국|메클렌부르크슈베린 공국]] * 1808년 3월 22일 가입 * 의무 제공 병력: 1,900명 * [[빈 체제]]에서 대공국으로 승격했다. * ''[[올덴부르크 대공국|올덴부르크 공국]]'' * 1808년 10월 14일 가입 → 프랑스 제국에 합병{{{-2 (1810년 12월 13일)}}} * 의무 제공 병력: 800명 * 올덴부르크 공국은 신성 로마 제국 말엽부터 북독일에서 세력을 확장하는 프로이센과 하노버의 압력에 친척인 러시아 황실에 의지했다.[* 공가인 [[홀슈타인고토르프 왕조|홀슈타인고토르프 가문]]은 당시 [[덴마크]] 왕실인 [[올덴부르크 왕조]]의 분가이며, 러시아 황실 및 스웨덴 왕실과 같은 가문이다. 라인 동맹 시기의 공작인 빌헬름과 후계자인 페터는 4촌 형제이며, [[표트르 3세]]와는 6촌 형제로 당시 러시아 황제 [[알렉산드르 1세]]는 표트르 3세의 손자인 만큼 두 사람과 8촌 관계가 된다. 또한 당시 스웨덴의 섭정이었다가 조카의 왕위를 승계한 [[칼 13세]]는 4촌 형제이다. 페터는 알렉산드르 1세의 [[예카테리나 파블로브나 여대공|여동생]]을 며느리로 들였기에, 올덴부르크 공가는 러시아 황실의 인척이기도 하다.] 그 덕으로 라인 동맹에도 가입하지 않았는데, [[틸지트 조약]]으로 나폴레옹이 올덴부르크에서 러시아의 주권을 존중하는 것을 약속하면서 역으로 러시아 황제가 라인 동맹 가입을 압박하여 뒤늦게 가입했다. 하지만 1808년 10월 무렵부터 프랑스와 러시아의 관계는 악화되기 시작했고, [[대륙 봉쇄령]]이 지지부진한 상황에 불만을 품은 나폴레옹이 1810년에 북해 연안 일대를 프랑스 제국으로 강제 합병하면서 올덴부르크 공국도 그 대상에 포함되었다. 나폴레옹이 몰락한 뒤에 빈 회의에서 러시아 제국은 올덴부르크에 대한 이권을 강력히 주장했고, 그 결과 1815년에 대공국으로 승격한 올덴부르크는 실질적으로 러시아 제국의 영향권에 속하게 되었다. 당시 공작 빌헬름과 후계자인 페터는 대공 칭호에 부담을 느껴 여전히 공작을 자처했지만, 1829년에 즉위한 아우구스트부터 정식으로 대공 칭호를 사용했다. 1866년 [[프로이센-오스트리아 전쟁]] 중 러시아가 친프로이센 정책으로 전환하면서, 올덴부르크 대공국은 [[북독일 연방]]에 소속되었다.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-BY-NC-SA 2.0 KR으로 배포하고,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.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.캡챠저장미리보기